칼럼

제목

워킹맘에게도 진정한 워라밸은 존재하는가

작성자
일생활균형재단
작성일
2018-11-26
조회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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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워킹맘에게도 진정한 워라밸은 존재하는가


워킹맘 이래화


 
2016년 7월 꿈의 복직.

2년 터울인 아이들 육아를 위해 3년 3개월이라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연이어 하고, 회사에 복직하니 ‘사무실이 천국이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회사 구내식당에선 내가 먹을 점심밥도 해주고, 내게 주어진 일만 하면 누구하나 간섭하는 사람이 없고, 심지어 커피한잔의 여유까지 있다. 사무실 근처엔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커피전문점에서 꿀맛 같은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여기가 천국이 아니고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 다시 집으로 출근할 생각에 어깨가 무거워진다. 2016년 복직 당시 둘째가 겨우 17개월이었다. 친정 부모님이 감사하게도 아이들 어린이집 등·하원을 도와주셨지만 18시 30분 쯤 집에 도착하면 다시 전쟁이 시작된다.


아이들은 낮 동안 엄마 품이 그리웠기에 반가운 엄마를 보며 ‘안아 달라’, ‘내 얘기를 들어 달라’하며 괴롭힌다. 두 아이들 동시다발 질문공세 받아주기, 엄마 가방 속엔 뭐가 있을까 가방 뒤지기 놀이, 어린이집에서 했던 활동 자랑하기, 저녁밥 먹이기 전쟁 등...


출근할 땐 예쁘게 차려입고 긴 머리를 풀고 나가지만 집에 들어오면 바로 머리를 질끈 묶어야 한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조차 짐이 되니깐. 그래서 나의 왼쪽 손목에는 늘 고무줄이 걸려있다. 언제 어디서 아이들이 내 머리를 묶게 만들지 모르니깐... 한 차례 전쟁을 치르고 씻기고 누우면 저녁 9시이다. 그림책을 몇 권 읽고 9시 30분쯤이 되면 아이들도, 녹초가 된 엄마도 함께 스르르 잠이 든다.


이런 워킹맘에게 워라밸은 있는가?


워킹맘 3년차.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6살, 4살이 되었다. 흔히들 얘기하기로는 36개월까지가 육아기간에서는 고비라고 한다. 그 기간을 무사히 해냈으니 이제 육아도 할만 해 진 것 같다. 이제 정말 진정한 워라밸을 실천할 때가 온 것인가.


하지만 일(work)와 생활(life)을 견주다 보니 왠지 그 안에 ‘나’가 빠진 것 같았다. 3년간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영혼이 우주 저 멀리까지 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도는 느낌이다. 마치 현실이 아니고 몽상에 빠진 듯한 기분이 문득문득 나를 파고들었다.


‘나’는 어느새 공허한 마음을 채우고자 독서를 하고 강연을 찾아서 다니고, 온라인 강연까지 찾아 듣고 있었다. 선생님, 교수님이 시키지도 않았고, 직장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이직을 고민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느 순간 아이들을 재우고난 9시 30분 이후는 ‘나’를 위한 시간이 되었다. 물론 피로에 지쳐 아이들과 함께 꿈나라로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아이들을 꿈나라로 보내고 남은 밤 1~2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달콤한 워라밸 시간’이다.


문학책도 읽고 독서 감상문을 블로그에 올려 공유하기도 한다. 감상에 젖거나 너무나 감동을 받으면 남편을 붙잡고 이야기도 나눈다. 지금까지 없었던 아주 조금은 수준 높아진 대화들을 나누고 있으면 이런 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쾌락이고 작지만 소중한 행복임을 느낀다. 이때 남편과 함께 마시는 와인(여름엔 맥주겠지) 맛은 더없이 달콤하다.


과거에는 워킹맘에게 워라밸은 단지 업무와 가사(육아)의 균형 맞추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워킹맘들이 육아가 끝난 뒤 중년이 되어 ‘지난 세월이 허무했다’고 느끼지 않으려면, 진정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못했던 것을 탐색하고 공부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워킹맘 3년차가 되어 소위 살만해지니 진정한 워라밸이 손끝에 잡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정한 워라밸’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쇼핑, 드라마, 예능프로, 소모적인 모임, 불필요한 회식, 스마트폰... 이러한 달콤한 유혹들을 조금씩 이겨내고 나면 마법처럼 시간이 생긴다.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 속 주인공인 소녀 모모가 ‘시간을 훔치는 도둑’들로부터 시간과 꿈을 빼앗긴 어른들과 아이들을 구해내 다시 여유롭고 평화로운 마을을 되찾은 것처럼 말이다.


‘시간도둑’으로부터 되찾은 소모적인 시간들이 빠진 자리에 워라밸이 ‘나 여기 있어요’하며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2년 6개월 전 복직 당시엔 없을 것만 같았는데 말이다.


2018년도 한 달 남짓 남았다. 연 초 세운 계획을 많이 지키지는 못했지만 소중한 하나, ‘진정한 워라밸’을 발견한 것에 감사한다.


오늘은 큰 아이가 만들 ‘캥거루’ 재료를 문방구에서 사가기로 했다. 물론 아직도 퇴근 후 집에 가면 아이들 뒷바라지에 힘들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이 끝나도 가정에서의 또 다른 역할과 영역이 있음을 알기에 보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