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칼럼] 청년의 ‘일 생활 균형’ 지원은 달라야 한다.
청년의 ‘일 생활 균형’ 지원은 달라야 한다.
안선영 일생활균형재단 WLB연구소 책임연구원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과거에 좋은 일자리로 불렸던 많은 산업들이 이제는 하향 추세에 들어서고 있고 어떤 직업이 평생 몸담을 수 있는 안정된 직업이 될 수 있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한국 경기뿐만 아니라 세계 경기에 따라서 많은 산업들이 좌지우지 되고, 우후죽순으로 생긴 유행 사업들은 곧 다른 사업으로 대체돼 그 자리에 폐업 딱지만이 쓸쓸하게 남아 남아있다. 철밥통으로 여겨지던 직장들 역시 더 이상 철밥통이 아니게 되었으며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사이에 비정규직, 계약직, 인턴제와 같이 반복적으로 사람만이 교체되고 소비되는 방식으로 일자리 구조도 바뀌고 있다.
“우리 땐 안 그랬는데, 요즘 애들은” 이라는 문장은 더 이상 효력이 없다. 이제 사람들은 우리 땐 안 그럴 수 있었던 사회구조가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지금의 청년들이 처한 현실은 그 보다 더 각박한 상황임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청년들의 일과 삶의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숙제이자 앞으로도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는 큰 문제로 계속 남아 있다.
청년들의 일과 삶의 문제는 여러 사회문제와 줄줄이 얽혀있다. 이들은 기존 세대보다 더 많은 자원을 가지고 더 많은 문화적 혜택을 누린 세대이지만, 동시에 외환위기를 경험하면서 ‘평생직장’에 대한 관념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직접 본 세대다.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다’고 믿은 부모 세대의 비호 아래에서 더 많은 시간을 스펙 쌓기에 투자할 수밖에 없었으나 부모 세대와는 다른 불투명한 직업 전망 속에서 모든 책임을 개인이 지면서 걸어 나갈 수밖에 없는 세대이기도 하다. 대안으로 남아 있는 것은 그나마 안정적이라고 판단되는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거나 창업을 하거나 한국을 떠서 이민을 계획하는 일 뿐이다.
간신히 직장을 구하더라도 아무리 벌어도 혼자서 한 가구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소득을 얻기 어려운 상황,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과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당연히 결혼은 후순위로 미뤄지고, 결혼을 하더라도 맞벌이가 필수인 상황에서 아이를 안정적으로 낳아서 키우기에는 위험(risk)이 너무 많은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결혼과 출산은 포기해야하는 1순위가 된다. 이는 한 개인이 보다 풍요롭게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이른바 브런치를 먹고 더 좋은 차를 끌고 다니고 더 좋은 백을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이 개개인의 선택은 안타깝게도 사회 전체의 문제와 연결된다.
당장 청년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사회 구조 속에서 저출산 문제는 당장의 인구절벽 그래프로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게 되었고 노인 세대를 돌보기 위한 사회자본이 더 많이 지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와 부모 세대의 부의 축적으로 청년 세대 간에도 계급차가 발생하면서 계급 간, 세대 간 갈등은 더욱 고조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청년 문제는 사회 전체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큰 문제가 되었다.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얽혀있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 지자체, 기업들은 청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하나씩 내놓기 시작했다. 청년 창업 지원과 같은 직접적인 지원 프로그램이나 청년 채용을 한 기업에 대한 세액 공제 등과 같은 간접적 지원 프로그램, 취업 연수 지원제와 같이 인식 전환을 제고하는 시민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솔루션으로서 등장하고 있고 지역 내부에서도 청년의 실업 문제와 일생활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양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결국 실제 청년 고용의 질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고 숫자 채우기에 급급한 가운데 한시적으로 시간을 유예시키는 방식으로 변형되어 버리거나, 취업까지 만을 염두에 두고 있어 취업 이후의 일과 삶의 질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 방식으로 활용되어 버리고 만다는 점에 있다.
이미 청년들은 많은 인턴제에 소모되어 오면서 이러한 프로그램이 스펙의 한 줄이 될 수 있을 뿐 실질적으로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청년고용이라는 이름으로 실시된 프로그램에서 청년들은 제대로 된 ‘일’을 배우기보다는 기관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고 제대로 된 실무 하나 배우지 못한 채 몇 년의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시장으로 내쫓기게 된다.
실제 기업에서는 한정 된 예산 안에서 신규 인력 채용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청년 채용 정책이 하달되었을 때 울며 겨자 먹기로 청년들을 신규 인력으로 채용하지만 실제론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으로서 한시적인 충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취업이 된다 하더라도 이후의 불투명한 미래는 개선되지 않는다. 창업 지원 역시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청년들에게 창업을 장려하는 사회가 과연 정상적인 사회일까? 창업은 어떤 개인에게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시장에 펼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으나, 질 좋은 고용의 자리가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 내몰려지는 차선책에 불과할 가능성도 높다. 기본적으로 질 좋은 고용의 자리가 창출되어 있는 가운데 개인이 선택의 영역으로서 창업에 대해 고려가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정책과 프로그램은 고용 안정에 대해서 힘을 싣기 보다는 창업이 마치 새로운 노동 시장의 획기적인 패러다임인양 선도하여 더욱 불안정한 시장으로 개인들을 내모는 구조를 만든다.
청년들은 이 모든 대안들이 실제론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매우 잘 알고 있다. 이미 그들에게 한국은 ‘헬조선’이다.
그 어떤 대안도 안정적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청년 세대에게 ‘일과 삶’의 균형은 여전히 먼 길이다. 동시에 앞의 세대들이 살아온 길과는 전혀 다른 모양으로 설계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조직은 평생 충성해야 할 무엇, 나의 삶과 함께 길게 호흡할 그 무엇이 아니라 한시적으로 머물렀다 떠날 수밖에 없는 임시 거처에 불과하다. 어차피 그 어떤 회사도 ‘평생직장’이 될 수 없는 구조라면, 차라리 개인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형태의 프로그램이나 정시 퇴근 이후 개인의 다른 삶을 지원할 수 있는 구조의 회사로 이동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것으로 여겨진다. 장시간 노동이나 야근을 통해 개인을 소모하는 방식의 회사에 굳이 오래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다. 이들은 회사가 나에게 고용 안정에 대한 보장을 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나를 착취하는 구조를 유지한다면 굳이 나의 에너지를 써서 회사를 바꿀 이유도, 설득할 이유도 없다. 언제든지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고 그것이 당연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삶의 모습도 변화한다. 더 이상 아버지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4인 가족의 화기애애한 그림은 정상가족이 아니다. 함께 살아갈 파트너의 형태도 달라진다. 혼인 관계로 묶이는 것이 실질적으로 자신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실이 더 크다고 느껴지면서 혼인을 유예하거나 일시적 동거 관계를 유지하면서 언제든지 관계를 단절시켜도 개인의 삶이 무너지거나 흔들리지 않는 안전 장막들을 마련한다. 이제 과거와 현재의 개인은 아예 다른 개인들이다.
이 가운데 정말로 청년 고용을 창출하고 청년의 일과 삶의 질을 높이고 싶다면 기본적으로 고용 안정이 보장되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자명하며, 단순히 숫자 채우기 놀음, 청년을 끼워 넣는 방식의 사업은 지양되어야 한다. 질 좋은 고용의 자리를 창출하는 것과 동시에 이미 고용관계에 있는 청년들이 오랜 기간 한 조직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질 좋은 교육과 서비스가 지속적으로 기업 내에서도 마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퇴근 이후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시간적 여유와 경제적 여유를 보장했을 때 비로소 청년의 일과 삶의 문제는 해결될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청년들은 숫자 1이 아니다. 이들을 살아 있는 하나의 사람들이며, 모든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는 고리들이다. 읽고 나면 삭제되는 숫자 1로 이들을 읽고 있는 한 해결책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