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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16년 9월 칼럼] 뇌과학으로 바라본 일과 생활의 균형

BY일생활균형재단

뇌과학으로 바라본 일과 생활의 균형

정책자문위원 김창엽

몇해 전. 평소 드라마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내게서 본방을 기다리게 만든 모 방송사의 기획드라마가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철저히 자신의 존재를 잊고 조직에서 매일 자신의 생존을 확인하며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음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넘어 이러한 현실의 벽에 좌절하며 매회 가슴 먹먹하게 만들었던 ‘미생(未生)’.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님을 의미하는 ‘미생(未生)’.

오늘 날 대한민국 일터의 모습을 이보다 더 명확히 표현해 낼 수 있을까. 가히 ‘신의 한수적 표현’이라 칭하고 싶다. 왜? 무엇이? 이 드라마로 하여금 사회전반에 ‘현실앓이’를 일으킬 정도로 가슴 먹먹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바로 우리 사회와 기업내부에 깊숙이 뿌리 내린 그간의 일 중심적 가치가 사회전반에 얼마나 심각한 제 균형가치들을 훼손시켜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조직만을 우선 가치로 강요받고 개인의 삶과 정체성마저 조직의 성과목표 달성에 올인시키며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지만 정작 공과는 언제나 다른 기준에 의해 평가되는 현실. 결국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번아웃(burn-out)된 자신의 모습과 또다시 ‘미생’과 같은 존재로 하루 하루 조직에 기대어 ‘오늘도 무사히’를 기원하는 소박함뿐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해 향후 5년이 이들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특히 인구절벽을 초래할 저출산 문제가 가장 문제가 될 것이다. 분명 우리나라의 빠른 경제성장이 국가경쟁력 제고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반면에 이 과정에서 확산된 일 중심적 가치는 사회전반에 심각한 ‘시간빈곤현상’을 초래하여 가족은 물론 개인 삶조차 준비하고 돌볼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못함에 따라 국민의 낮은 삶의 질이 저출산과 고령화의 가속화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부가 최근까지 123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OECD 국가평균 합계출산율(1.7명)에 미치지 못하는 1.21명(2014년 기준) 수준에 그치고 있음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결국 정부의 저출산 문제에 대한 접근이 전제가 되는 국민의 삶의 질 개선보다 출산율의 수치적 증가에만 함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이와 같은 논의 속에서 일과 생활의 균형개념은 시간빈곤현상을 겪고있는 개인의 불균형 된 삶에 균형을 맞춰 삶의 질 개선을 통해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이며 통합적인 대안이라 할 수 있겠다.

일각에서는 이를 단순히 근로자들을 위한 근로환경 개선이나 복리후생만을 우선 강조하는 것이라 주장하며 실제로 조직생산성에도 기여할 것인가에도 명확한 근거를 요구한다. 이에 대해 사회과학분야에서 수행한 여러 연구결과들이 그 유효성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만 사회과학의 통계적 유의성만으로는 필요적 근거는 되나 충분한 근거가 되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를 뇌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일과 생활의 균형과 조직생산성과의 관련 근거는 명확히 설명되어 질 수 있다. 즉 개인의 생산성은 곧 뇌기능의 발달과 연계되어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주목받는 뇌과학은 그간 인간에 대한 이해가 심리학을 중심으로 발달되어 왔으나 의료기술의 발달로 뇌과학이 인간 뇌의 기능들에 대한 비밀들을 하나씩 밝혀내면서 인간행동을 보다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여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결론적으로 뇌과학에서 보는 일과 생활의 균형은 인간의 뇌기능적 특성상 삶의 질 개선은 생산상 향상의 기여로 반드시 귀결될 가능성 높은 과학적 근거를 명확히 해주고 있다. 이와 관련한 몇 가지 주요 사항을 예를 들어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일과 생활의 균형은 개인이 삶의 다양한 영역들에서 주관적인 통제감을 갖고 만족하는 상태로 정의되고 있다. 즉, 개인이 자신의 삶 전반을 잘 통제하고 있다고 심리적으로 만족감을 느끼는 상태가 일과 생활의 균형상태인 것이다. 인간이 이러한 자기주도의 통제감을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결정적인 차이는 외부자극과 정보를 분석하여 현재의 문제에 대한 최적 반응의 도출은 물론 장래에 대한 예측과 더불어 이에 대한 행동계획의 수립을 가능케 하는 대뇌피질영역의 발달에 있다.

특히 전두엽과 두정엽, 측두엽의 정보분석을 담당하는 연합영역들의 발달은 인간존재 자체가 주도성과 통제감을 갖기를 원하는 생물학적 본성을 가지고 있음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따라서 개인이 삶에 대한 주도성과 통제감을 외부 또는 타인에 의해 지속적으로 억제 받게 될 경우 인간 본성의 자연적 발현이 제약받게 되어 자발적 동기에 이르지 못하고 불만이 누적됨에 따라 소극적 또는 반항적 사고나 행동특성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둘째, 일과 생활의 균형에서 적절한 수면은 성과에도 긍정적이다는 주장에 대해 뇌과학에서도 8시간 내외의 수면이 적절하다고 하였다. 인간 뇌는 생존을 최우선 목적으로 하며, 생존에 필요한 외부 자극과 정보들만을 선별적으로 저장 및 기억하고 이를 패턴화시킨 신경망으로 구축하여 장래 유사상황에 신속히 반응할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운영된다. 신체기관의 일부로서 뇌는 수면을 통한 휴식과 더불어 추가적인 외부자극과 정보를 차단하고 그날의 중요 정보만을 선별하여 이를 시상하부에 위치한 기억담당 해마로 보내 장기기억화 하는 등의 뇌기능 유지활동을 수행한다. 수면은 총 5단계로 이뤄지며, 1단계는 얇은 수면, 2단계는 약간 깊은 수면, 3~4단계는 잠에 취하는 가장 깊은 수면이나 꿈을 꾸지는 않는다. 1~4단계까지가 Non-Rem Sleep 단계이며 마지막 5단계가 Rem Sleep단계로 꿈을 꾸는 단계가 된다. 5단계의 수면사이클은 수면 중 수회를 반복하게 되며 1회의 사이클은 대략 2시간 내외가 소요된다. 충분한 뇌 휴식과 정보정리 기능을 위해선 수면사이클이 총 4~5회 반복되어야 건강한 두뇌활동이 가능하다. 따라서 2시간 사이클이 4~5회 반복될 경우의 계산법상 8시간 내외가 최적 수면시간이 되는 것이다.

셋째, 인간의 또 다른 본성으로서의 성장욕구는 뇌과학에서 측두엽 영역에 위치하고 있는 편도체와 신경전달 물질인 도파민 및 세르토닌에 의해 설명되어 진다. 편도체는 측두엽 영역에 위치하는 정서를 관장하는 기관으로 감각기관을 통해 지각된 외부 자극과 정보 중 위험 또는 위기, 불안과 안정, 기쁨과 슬픔 등의 정서를 직관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장애요소가 인지되면 이에 대처할 사고와 행동을 모색하게 되고 문제를 해결하게 되면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도파민이 분비되어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안정된 환경 속에서는 세르토닌을 통해 편안함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내적보상기제가 작동하게 된다. 비록 이들 두 신경전달물질의 효과는 단기적이지만 중독성이 있어 이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고자 또 다른 도전목표를 설정하는 선순환을 통해 인간은 끊임없이 성장하고자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800년대 중반 산업혁명 이후 테일러리즘이 효율적 자원관리로 현대 자본주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으나 인간의 노동을 자원으로 인식되게 한 것은 현대에 큰 후유증을 낳고 있다. 비단 저출산․고령화 문제들만이 아니어도 인간존재에 대한 기본적인 생물학적 인식만으로도 일과 생활의 균형은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개념일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사회전반에 사회발전과 문화적 성숙에 걸 맞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뤄야 할 시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