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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칼럼] 사회의 편견이 만들어 내는 직장맘의 죄책감

BY일생활균형재단

사회의 편견이 만들어 내는 직장맘의 죄책감

임희수 (일생활균형재단 상임이사)

영화 <인턴>은 열정 넘치는 30대 CEO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경험 풍부한 70세 인턴의 이야기이다. 여주인공 줄스 오스틴은 전업주부에서 18개월만에 220명의 직원을 두게된 성공한 인터넷 쇼핑몰 CEO이다. 그녀는 사무실 내 이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분 단위 미팅을 진행하며 사업의 전반을 열정적으로 관리하는 사업가이다. 집으로 향하는 이동시간 동안에도 서너대의 모바일 기계로 업무를 진행하는 하루 24시간이 너무도 부족한 그녀이지만, 집에 도착해서는 딸아이에게 최선을 다해 엄마 역할을 한다. 워킹맘인 줄스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학부모들은 줄스에게 아이들 생일 파티 준비를 위해 과콰몰리를 요청하며, “바쁘니깐 그냥 사와도되요”라고 비아냥거린다. 하지만 줄스는 “아니요, 만들 수 있어요. 만들어서 보낼게요”라고 말한다. 또한 남편의 외도 사실을 발견하였지만 자신이 가정을 돌보지 않아 생긴 일이라며 스스로 자책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과 가정에서의 역할 모두 완벽하게 해내는 그녀이지만 늘 ‘나쁜 엄마‘, ‘나쁜 아내‘라는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한다.

이러한 죄책감은 성공한 회사의 CEO가 아닌, 부인의 사업을 위해 육아에 전념하는 남편이 없는 일반적인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직장맘)의 경우 더 크게 작용한다. 늘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 그리고 ‘피해의식’이 여성들을 힘들게 한다. ‘3살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라는 애착이론, 판매용 유아식을 먹이는 엄마를 보는 주변의 냉소적 시선, 그리고 아이의 신체적 발달문제까지 엄마가 짊어져야하는 무거운 책임감 등은 개선되어야하는 지점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직장 여성들을 좌절시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자리하고있다. 핵가족화가 일반상식이 되었고, 주변의 이웃과 왕래가 없음이 오히려 더 안전하다는 사회에서, 직장맘들은 자녀의 육아와 집안살림, 그리고 임금노동 모두를 오롯이 혼자 감당하며 버텨내고 있는 것이다.

수백만의 회원을 가진 엄마들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셀 수없이 늘어나고 있다. 지역별, 특징별 다양한 커뮤니티 속 많은 엄마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오프라인 커뮤니티 활동을 할 시간이 부족한 직장맘들에게는 이러한 온라인 카페들은 고맙게도 컨닝페이퍼 역할을 한다. 어떤 보육시설이 좋은지, 아이가 아플 때 찾을 수 있는 병원은 어디인지, 동네의 아이들은 어디서 친구들을 만드는지, 학교준비물은 어떻게 챙겨야하는지 등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인 것이다. 많은 직장맘들은 점심시간 혹은 아이들이 자는 늦은 저녁, 이런 카페의 정보들을 읽으며 자신의 휴식과 부족한 육아의 시간을 맞바꾼다. 이렇게 시간을 쪼개고 잠을 줄여보지만 여전히 커뮤니티 내에선 정보만 캐내는 얌체, 직장에서는 불편함을 주는 민폐동료, 그리고 집에서는 나쁜엄마와 부족한 아내로 비춰진다.

여성특혜와 역차별이라는 논란까지 일으키면서도 정부는 큰 관심과 지원으로 직장맘을 지원하는 정책과 기관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하지만, 정책과 더불어 직장맘을 향한 사회구성원의 인식과 문화의 개선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여성들이 자신의 직장을 포기하고 전업주부로 돌아서는 이유는 사용할 수 있는 제도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육아와 가사를 제쳐두고 자신의 욕심 때문에 경력을 유지하는 여자‘라는 주변의 시선이 무서운 것이다. 육아와 가사 그리고 직장 모두를 책임지기엔 그 무게가 너무 무겁다.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통해 늘 한쪽을 선택하며 선택하지 못한 다른 한쪽에 미안해하는 죄인이 되는 순간들 또한 피하고 싶은 것이다.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갓 돌이 지난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고 출근하는 직장맘이다.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 모두 양육을 맡아줄 수 없어 사설 베이비시터와 아파트 단지 내 보육시설에서 아이를 맡아주고 있다. 여느 직장맘과 다르지 않은 “나의 시간”은 생각도 할 수 없이 일과 가정 모두를 챙기면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하루는 아이를 대신 맡아주지 않는 나의 엄마를 원망 한 적 있다. 그러다 어린시절부터 맞벌이 가정에서 자라왔던 나와 나의 동생들을 떠올렸다. 우리의 현재는 나름 괜찮게 굴러가고 있으며 유년기 또한 전혀 불행하지 않았다. 지금 경력을 키워 사회에서 여전히 활동 중인 부모님은 우리의 롤모델이 되었고 존경의 대상이지 원망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의 직장맘들의 업무능력이나 육아에 대한 지식과 아이에 대한 애정은 이전 세대보다 줄어들진 않았을 것이다. 단지 직장맘이 그들의 선택을 행복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편견을 버리고 직장맘을 바라보는 문화만이 필요할 뿐이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슈퍼맘은 현실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한 근로자의 업무에 대한 동기부여나 생산성이 높은 것은 이론적으로 밝혀진 바 있으며, 엄마의 행복이 아이의 정서발달에 크게 작용하는 것 또한 상식이 될 만큼 알려진 사실이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는 아이의 독립성과 규범을 길러주며, 엄마의 자부심이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준다. 아이가 있는 근로자는 넓은 포용력과 배려심으로 팀의 화합을 이끌며 동료 직원들의 동기부여를 자극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부산의 한 글로벌 포럼에서 사회의 성공한 여성 리더들이 “나쁜엄마” 커밍아웃을 하는 일이 있었다. 그 시작은 (사)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의 박혜란 이사장의 고백이었다. 세 아이의 육아를 위해 10년의 경력단절을 겪은 박혜란 이사장은 자신의 인생을 위해 과감하게 육아에서 손을 떼고 강단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나쁜엄마“라고 지칭했다. 하지만 이 ‘나쁜엄마’가 주목받는 이유는 흔히 자녀교육을 잘시켰다라고 인정하는 기준인 ‘자녀의 입시와 직업’ 항목에서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박혜란 이사장은 ‘나는 나쁜엄마이지만 그것과 자녀의 성공은 별개’라고 이야기하며 오히려 자신이 나쁜엄마였기에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너스레까지 떨었다. 그 이후 다음 발표자들이 하나 둘 씩 ”나는 나쁜엄마입니다“라는 고백으로 발표를 시작하였다. 발표자들은 글로벌 기업의 잘나가는 여성 리더들이었으며 그녀들 역시 슈퍼맘을 선택하기 보다는 ”나쁜엄마“를 선택하였고 그 결과는 엄마와 자녀 모두에게 성공적이었다. 로직은 심플하다. 행복한 엄마가 키우는 아이는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란다.

물론 성공한 케이스만 놓고 보자면 오히려 주눅이 드는 여성들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성공한 CEO가 아니더라도, 내 아이가 소위 ‘스카이’나 ‘아이비리그’를 다니지 않더라도 서로가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 수 있다면 그게 성공한 ‘좋은 삶’이 아닐까? 모든 일하는 여성이 ‘나는 나쁜엄마입니다. 하지만 나와 나의 가족은 행복합니다.’라는 말을 당당히 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과콰몰리를 사서 유치원 행사에 보낸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과콰몰리는 아이와 나의 관계, 아이의 미래에 마이크로 1 퍼센트 정도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과콰몰리를 맛있게 만드는 가게를 찾았어요. 거기서 사서 보낼게요”라고 멋있게 말하는 여성들이 많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