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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칼럼] 행복한 노후 삶을 위한 일·생활 균형 잡기

BY일생활균형재단

 

     행복한 노후 삶을 위한 일·생활 균형 잡기

부산대 사회복지학과

이기영 교수

퇴직을 목전에 둔 사람들은 대개 번민의 밤을 보내기 쉽다. 그동안 매달려왔던 ‘일의 세계’로부터의 이별을 고하고 이제부터 새로운 삶을 개척해가야 할 시간들이 열리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퇴직자들에 따라 조금 차이는 있겠지만, 퇴직은 대개 희망으로보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특히 우리나라의 퇴직자들의 절망감과 고민은 더욱 깊다. 제대로 된 퇴직준비, 노후준비가 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노후준비 부족은 각종 매스컴을 통해 이미 여러 차례 제시되었지만, 2016년 올해의 자료(한국보건사회연구원, 노후소득보장강화, 2016.1.21.)에서도 10가구 중 4가구에서 제대로 된 노후준비 방안이 없다고 반복해서 보고된다. 노후의 연금이나 소득활동 같은 경제적 대응뿐 만 아니라 과거보다 훨씬 연장된 은퇴 후의 삶의 시간- 잠, 식사 등 생리적 욕구해결 시간을 제외하고 대략 8만 시간으로 계산된다- 을 가치 있게 보낼 준비가 제대로 안되어 있는 것도 매우 큰 문제이다.

퇴직 후의 삶을 경험한 많은 분들의 공통적 고통호소 중에 하나는 마땅히 어디 나갈 데가 없는 것이며, 편히 안주해야 할 가정에서도 반겨주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대개 한국의 중년 남성들은 직장을 그만두기까지 평소에 가정에 해놓은 것이라고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자녀의 입시도 자세히 관여해 본 적이 없다. 오죽하면 어머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경제력, 그리고 아버지의 ‘무관심’이 자녀 대학입시 성공의 3대 요소라고 할까? 아버지는 그냥 평소처럼 아무 관여도 안하고 가만히 있어주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무존재감을 표현해주는 ‘웃픈’ 현실이다.

일·가정 균형의 노력은 노동시장을 떠난 노년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감안하면, 노동시장에 머무는 시간동안의 삶의 철학을 벗어나 일생동안의 삶의 철학으로 각인되어야 한다. 일본의 베이비부머세대인 단카이세대를 위한 은퇴지원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것들 중에 ‘아버지 돌아오셨어요 파티’가 있고 이러한 프로그램들의 주요 목적은 직장에서 퇴직한 사람들을 ‘지역사회로의 회귀’시키는 것이다. 즉, 가족과 지역사회내에 부재했던 중년 아버지(혹은 어머니)의 존재를 이웃과 지역사회에서 봉사하는 존재로 새롭게 부각시키자는 취지의 사업들이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우리의 아버지들은 몸은 집에 담고 있었지만 실제 가족생활과 관계측면에서는 집과 지역사회를 떠나 있었다는 말이 된다.

한국의 직장인들이 가족에 충실하기 어려운 직업생활 구조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과거에 직장은 평생직장의 개념이었다. 내가 직장에 죽을 때까지 충성하면 나와 내가족의 생활은 보장받을 수 있는 그런 분위기였기 때문에 직장을 위해 몸 바치는 것이 가장인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자 희생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평생직장이 개념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 이고,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출근해서 직장을 위해 죽도록 일하는 사람이 결코 이상적인 직장인으로 평가받지 못한다. 실제로 한국식 일하기는 객관적으로도 생산성을 높이지 못한다고 밝혀진다. 미국 노동통계국 자료분석에 따르면 각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을 노동 시간으로 나눠 시간당 생산성을 계산할 때, 30일 유급 휴가를 가고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는 노르웨이의 생산성이 가장 높고, 세계에서 가장 노동시간 길기로 유명한 한국은 꼴찌이다(조선일보. 2015.7.4.일자 C4면).

한국의 아빠들은 과거 그러한 일충성 문화에서 관계적으로 가족에게 소원한 사람이 되었을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망가져왔다. 일과 직장관계에서의 스트레스, 반복되는 회식, 과도한 음주 등은 한국의 중년세대를 세계의 1위 술소비 주체(소주, 위스키 등 증류주 소비부문 1위, WHO 2014년 알콜 및 건강세계현황보고서)로 만들어 버렸다. 음주로 인한 건강수명 단축부문에서 세계 으뜸이며, 알콜로 인한 간암사망률이 OECD국가중 1위라고 한다. 또한 베이비부머들의 약 46%를 만성질환이 있다고 응답하고 있다(한국보건산업진흥원 2015.4.6.자료). 한국인 50대의 사망원인의 1위가 암이고 2위가 자살이다. 건강수명이 짧은 인생, 노년기 질환으로 긴 시간 돌봄과 부양이 필요한 인생은 가족과 지역사회의 짐이 된다. 우리시대 경제번영의 견인차로서 피땀으로 가족들을 먹여 살렸다는 공훈은 상처뿐인 영광이 될 뿐이다. 회사를 위해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가족에게 짐이 되는 한국식 일문화는 하루속히 청산되어야 할 대상이며, 결코 미래세대에게 권하지 않아야 할 관습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로바둑기사 조훈현씨는 바둑에서 ‘9명의 하수가 못 읽는 것을 1명의 고수가 와서 10초만에 바로 파악한다’고 한다. 그 고수의 통찰력은 바둑판 전체를 균형있게 읽어내는 능력이라고 한다. 바둑판위의 모든 돌들은 쓰임새가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정확한 판단을 해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수들은 이러한 균형과 전체적인 시각이 약하다고 한다. 그는 영어로 장군을 제너럴(general)이라는 부르는 이유는 ‘종합적인’ 지식과 사고를 두루두루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부연하면서, 우리사회의 정치인은 성장과 분배, 못가진자와 가진자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아야 하고, 기업인은 단순히 비즈니스만 알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사회, 문화등 세상전체가 돌아가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에 균형이 있어야 함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내게 퇴직의 시간이 찾아 올 때, 그동안 챙겨놓지 못했던 ‘가정’이라는 삶의 공간은 내가 노후에 기댈 보루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야말로 안락한 노후로 가는 여정의 시작에서 크레바스로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일과 직장을 떠난 삶의 연습을 미리미리 할 필요가 있다. 일과 일로 인한 관계가 한꺼번에 사라진 상황을 그려보는 것은 마치 Well-dying 을 연습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관두껑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가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것과 비슷하다. 지나온 삶을 제대로 조망하려면 삶의 현장을 떠나서 ‘죽음’의 상태에서 바라다 보아야 한다. 그렇듯이 ‘일’ 과 ‘직장’ 이란 요소와 관계된 자신의 명함들을 모두 떼어 버리고 이 세상에서 ‘알몸’으로 존재하는 자신을 ‘현재의 나’ 와 분리시켜서 바라보아야 비로소 퇴직 후의 내가 보인다. 일에 매몰되어 있는 내가 현재 잃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일과 직장을 떠나기 전에 미리 회복해야할 소중한 인간관계가 어떤 것인지 가늠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