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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갔다왔더니 눈치 주며 퇴사 종용” 거부땐 인사 불이익

BY일생활균형재단

‘1.3명’

OECD가 발표한 국가가 존립하기 위한 저출산의 마지노선이다. 하지만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24명. OECD가 제시한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이런 추세라면 100년 후 우리나라 인구가 현재의 반 토막이 될 것이란 경고도 나온다. 이에 정부는 여성의 ‘모성권’ 보장을 위한 출산 장려 정책을 발표했다. 자녀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사회환경을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에 발맞춰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 모성권 보호정책이 확대·강화됐다. 하지만 최근 잇따라 불거지고 있는 ‘모성권 침해’ 사례는 여성노동자의 현실이 정부 정책과 괴리가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대구·경북지역에서 일어나는 여성노동자들의 ‘모성권 침해현장’을 점검했다.

◆ 퇴사 종용, 부당한 보직 변경…모성권 침해 사례 다양

영남일보는 대구여성노동자회 부설 고용평등상담실 등을 통해 모성권이 침해된 많은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래는 실제 상담 사례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사례1

30대 초반의 L씨는 2014년 초 대구에 있는 한 어린이집에 보육교사로 취업했다. 주택가에 있는 아담한 규모의 어린이집이었다. 일을 시작한 지 9개월쯤 지난 이듬해 1월 아이가 생겼고, 출산휴가에 대한 조언을 얻기 위해 동료들에게 몰래 털어놨다.

하지만 며칠 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원장은 L씨를 불렀다. 원장은 “학기가 시작되는 3월까지 그만두라”고 했다.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은 L씨가 항의하자 원장은 “임신 때문이 아니라 원아 수가 줄었기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그는 “지금껏 우리 어린이집에서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쓴 적이 없다”는 말도 함께했다.

수차례 사정을 호소한 L씨는 결국 어린이집을 그만뒀다. L씨는 “어린이집은 원장들 간 네트워크가 활발해 소문이 퍼지면 재취업하기 힘들어 더 이상 끌 수 없었다. 대다수 어린이집 교사는 부당한 일을 당해도 참는다”고 말했다.

#사례2

30대 여성 J씨는 경북지역의 한 사업체에서 3년 정도 사무직으로 근무했다. 마침 일도 적성에 잘 맞아 의욕적으로 생활해 왔다. 2014년 중순 아이를 출산한 J씨는 1년간의 육아휴직 만료를 앞두고 회사에 복귀 신고를 했다. 하지만 회사 측에서 돌아온 답변은 “퇴사해 달라”였다.

나가지 않고 버티자 사측은 J씨를 사무직에서 판매직으로 발령 냈다. 판매직은 사무직과 수백만원의 급여 차이가 있는 데다 승진도 늦은 편이었다. 회사의 고집을 꺾지 못한 J씨는 결국 퇴사를 선택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자발적 퇴사로 돼 현재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외국인 여성노동자 여건은 더 열악

외국인 여성노동자에 대한 모성권 침해는 더욱 극단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은커녕 임신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 ‘권고사직 카드’를 받기 일쑤다. 대부분의 회사는 휴직 대신 사직을 권했다.

베트남 출신 여성 S씨는 현재의 남편을 만나면서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에 산 지 10년째 되던 지난해 말, 대구시 북구의 한 조립공장에 취업했다. 취업 당시 임신 초기였던 S씨는 업체 사장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장은 이를 이해했다. 하지만 수개월이 지나 임신 6개월 차가 됐을 때, 사장은 S씨를 따로 불러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통보했다. S씨는 그 자리에서 “당황스럽다”고 말했지만 사장의 뜻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S씨는 “배가 불렀어도 매일 주어진 생산량을 다 채웠다. 그런데 갑자기 다음 날부터 오지 말라고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며 “한국 (출신) 여자에게도 과연 이렇게 했을까 궁금하다”고 고개를 떨궜다.

몽골 출신 20대 여성 P씨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다. 2014년 대구 성서산업단지의 한 공장에 취업한 P씨는 이듬해 초, 기쁜 마음으로 임신 사실을 사장에게 알렸다. 평소 자신을 잘 챙겨주던 사장이 이번에도 축하해 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며칠 뒤 사장은 P씨에게 “임신한 여성을 쓰기 힘들다. 일을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현정 대구여성노동자회 사무국장은 “타국 출신 여성노동자의 모성보호권리는 외국에서 일하는 우리나라 여성노동자의 모성보호권리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며 “외국인 여성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은 수면 위로 드러나기 힘든 만큼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 대구·경북 여성노동자의 모성권 보장 현주소

정부는 2005년 출산을 장려하고 모성을 보호하기 위해 ‘임산부의 날’(10월10일)을 지정했다. 대구시도 같은 맥락에서 매년 11월11일을 ‘대구시 출산장려의 날’로 지정해 각종 기념행사를 열어오고 있다. 경북도는 첫째 아이부터 출산장려금을 지급하는 등 적극적으로 출산유도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정부는 물론 지자체 단위에서 출산의 중요성을 외치고 있지만 공허하게 느껴진다는 지적이 만만찮다. 여전히 대부분의 여성노동자는 가정(자녀양육)과 직장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이는 다양한 지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에 접수된 상담을 분석한 결과, 2013~2015년 사이 출산휴가·육아휴직 등 모성권과 관련된 상담내용은 매년 전체의 30~40% 비율을 보였다. 연도별로는 △2013년 42.7%(1천129건) △2014년 34.3%(890건) △2015년 31.4%(732건) 등으로 나타났다. 대구여성노동자회 측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사례도 다수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또 통계청에 따르면 대구시민의 절반 이상은 여성취업의 장애요인으로 ‘육아부담’을 꼽았다. 전국 7개 특별·광역시 중 가장 높은 수준(51.2%)이다. 서울 46.4%, 부산 47.2%, 인천 46.6%, 광주 44.8%, 대전 50.2%, 울산 45.0% 등이다. 경북은 47.6%로 강원(50.8%), 제주(50.5%), 전북(50.4%)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에 속했다.

한편, 지자체 단위에서는 여성노동자의 모성권이 보호받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오고 있다. 대구시는 일·가정 양립 인식제고를 위해 지난해 일가정양립지원센터를 설립하고 민관협의체인‘일가정양립추진협의회’를 구성했다. 경북도는 현재 250억원을 투자해 일가정양립지원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2018년 완공이 목표다.

☞모성권= 임신·출산·육아뿐만 아니라 여성성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권리를 의미. 임신과 출산에서 고유한 영역을 갖고 있는 여성의 위치에 주목,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을 비롯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관심을 갖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시각에서 강조되기 시작했다.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가 활발해지면서 정부와 지자체가 모성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 등을 내놓고 있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