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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16년 12월 칼럼] 워킹맘 이모씨의 달콤한 상상!

BY일생활균형재단

워킹맘 이모씨의 달콤한 상상!

이호섭(일생활균형재단 정책자문위원)

아이와 손잡고 어린이집 가는길에 콩순이 주제가를 흥얼거린다. “엄마 금요일에 콩순이 뮤지컬 보러가요!”
“응, 도경아 아빠도 내일은 출근 안해도 되는 금요일이라 아빠랑 같이가자” 하니 아이의 함박웃음에 절로 엔돌핀이 솟아난다. 어린이집 도착, 오늘은 아이 담임선생님이 돌봄휴가를 가신 날이라 대체 보육교사 선생님이 도경이를 맞이한다. 아이를 맡긴 시간은 9시, 10시까지 출근하려면 조금 서두르는게 좋겠다.

3년 전부터 초등생이하 자녀를 둔 맞벌이 부모 중 한명은 의무적으로 출근시간을 10시로 해야한다는 법안이 시행되면서 아침 출근 전쟁은 바이바이~ 아이와 어린이집 등원시간은 행복의 시간으로 변했다.
얼마 전 일본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일본 NHK에서 특집방송으로 다룬 내용을 봤다며 연락을 했다.
부러워하는 친구에게 이 법안이 시행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들을 설명해주었더니 일본에서도 워킹맘 엄마들을 조직하여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다부진 목소리가 귀에 쩌렁하다.

몇 년 전까지 만해도 우리 아이를 17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맡기며 불안한 마음반 미안한 마음반 행여라도 다쳐서라도 오면 회사를 그만둬야하나 말아야 하나 하루에 수도 없이 몇 번을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나는 왜 일을 하고 있는가? 꼭 해야하는 일인가?”의 고민으로 분열적인 하루하루를 살았다. 2016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국사건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럼 과연 헬조선에 살고 있는 우리가 대한민국의 행복한 국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크고 작은 토론들이 마을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일어났다.

SNS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각자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모습과 바램들을 적어나갔고 디지털 강국의 면모답게 희망사항 중 현실이 될 수 있는 정책들을 빠르게 정리했으며 유치원생부터 요양원의 어르신까지 다양한 계층과 집단에서의 의견들을 잘 수렴하고 정책화 시키겠다고 약속한 후보가 지금의 대통령이 되었다.

너무 지치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우리가 정책으로 낸 의견들이 하나씩 현실화 되가는 과정을 보고 직접 참여할 때 느끼는 쾌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덕분에 나는 10시 출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어린이집 5명의 아동당 1명의 선생님의 배치로 아이들을 안전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게 되었고 국공립 어린이집 외에 공유공간에 마련된 거점의 돌봄시설들을 이용하면서 마을의 이웃들과도 재미난 작당모의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작당모의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은 주4일 근무 실시를 통해 실현 될 수 있었다.(물론 아직도 일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은 주6일 근무를 마다하지 않는다.) 주4일 근무를 통해 마을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니 좋은 이웃들도 만나고 마을의 발전적인 변화를 위해 너도 나도 자신의 재능이나 품이나 시간을 내놓으니 매주 갔던 마트에서 카트 가득 채우기 신공으로 풀어내었던 스트레스와 소비적인 생활과도 이별을 고하게 되었다.

골목마다 아이들이 뛰어놀게 되었으며 어르신들은 아파트 정자와 빌라 앞 화단에서 이야기 꽃을 피우는 모습을 종종 마주하게 되었다. 오다가다 얻어먹는 옥수수며 고구마와 토마토 맛도 달콤하고 푸근하다.

일과 생활에서의 적절한 균형과 여가생활까지의 삼박자를 맞추기까지 변화된 많은 제도가 시행되고 처음 1년째에는 자기검열에 시달렸다. ‘저 옆팀 팀장도 안가고 있는데 내가 가면 인사고가에 불이익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로 눈치 보기에 바빴다. 이런 제도 시행을 반기지 않은 선배 그룹들은 여러 가지 일에 딴지를 걸기도 했다. 나는 저런 제도 없이도 이만큼 이 자리에 올라왔다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어야했다. 직장 내에 이런 일들 이 빈번하게 생기면서 갈등조정을 위한 워크숍들이 많이 열리게 되었고 모든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지만, 주4일 근무 강제 시행 후 일-생활-여가의 달콤함을 경험 한 사람들의 마음은 너그러워졌으며 미래를 상상하기 시작했 다. 그리고 변화를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주4일근무제가 시행될 수 있었던 강력한 뒷받침은 복지국가를 근간으로 한 복지체계의 개편이었으며 실직상태에서도 월 100만원의 기본소득 지급은 자존감을 저하시키거나 나 자신을 버리지 않아도 되는 든든한 버팀목이 었다. 폐지줍는 동네 할어버지 할머니들은 자원의 순환적 관점으로 자신들의 일의 소중함을 얘기하고 있으며 창 문 없는 고시원에서의 생활에서 삼각김밥을 먹으며 능력 없는 부모를 원망하던 청년들은 꿈을 갖기 시작했다.

적게 벌어도 창피하지 않았으며 과도한 소비를 지속하며 자신을 뽐낼 이유들이 없어지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 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40대를 맞이한 워킹맘인 ‘나’는 현재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사이의 균형, 엄마인 나와 워킹맘인 나 사이의 균형, 부모와 자식 사이의 균형을 잘 잡기 위해 매일 매일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이런 세상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기쁘지아니한가?!.....

....... 라는 달콤한 상상에 빠진다는 2호선 대림역에서 7호선 장암행을 갈아탄다. 오늘은 딸아이가 몇 권의 책을 읽어달라고 할까. 크리스마스 선물도 사야하는데 무엇을 사야하나. 아 맞다 칼럼도 써야하는데 아이가 몇 시에 잘지 모르는 상태라 멘붕이다. 심지어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출근해야하는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워킹맘 이모씨의 달콤한 상상은 일상속의 분주함으로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