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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16년 05월 칼럼] 남성이 하는 여성운동 – 폭력 없는, 여성과 남성이 모두 행복한 세상을 위하여

BY일생활균형재단

남성이 하는 여성운동 – 폭력없는, 여성과 남성이 모두 행복한 세상을 위하여: 화이트 리본 <해외편>

WLB연구소 유화정 연구원

‘남성’이 하는 ‘여성’운동이라는게 뭘까? 필자는 이번 지면에서 대학원 시절 처음 알게 된 <화이트 리본>이라는 페미니스트 남성 단체를 소개하려 한다. 5년 전 어느 날, 지도교수님께서 다음 주 수요일에 ‘너가 좋아할만한 세미나’가 있으니 꼭 참석하라고 하셨다. 그게 무엇이냐 여쭈었더니 간략하게 ‘페미니스트 남성 조직’이라고만 하셨고, 단체 이름은 화이트 리본(White Ribbon)이라고 하셨다. 평소 여성문제는 남성의 문제이기도 하고, 그래서 여성뿐만 아니라, 어쩌면 여성보다 더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임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주장을 해와서 인지 나는 그렇게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다.

페미니스트 남성 조직에 대한 호기심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평소 수요 세미나에 참석하는 학생들보다 다소 많은 수의 학생들이 이미 자리해 있었다. 오늘의 강연자로 보이는 낯선 남자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화이트 리본의 요크 지부(York, UK) 대표라고 소개한 Mike는 언뜻 보기엔 평범한 중년 영국 남성이었다. 딱히 페미니스트처럼 생기지는 않았다는 첫 인상을 받았다. – 사실, 페미니스트처럼 생긴 ‘생김새’가 무엇인지는 전혀 알 수도 없고, 근거도 없는 이야기다.

화이트 리본의 기본적 정체성은 ‘Men working to end men's violence against women’이다. 다시 말하면,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한 운동을 하는 남성 조직이다. 1989년 ‘몬트리올 페미니즘 대학살’로 불리우는 사건 이후 생겨난 단체라고 한다. 몬트리올 페미니즘 대학살은 1989년 12월 6일 캐나다 몬트리올 지역 에콜 폴리테크니크(École Polytechnique) 대학교에서 한 남학생이 ‘나는 페미니스트들과 싸운다!’고 소리를 지르며 총기난사를 하여 총 28명의 학생들을 죽게 하고, 자신도 끝내 자살을 한 비극적 사건이다. 이 후, 남성들을 중심으로 자성의 목소리가 모였고, 화이트 리본을 꽂고 추모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이 사건이 지금의 반폭력 페미니스트 남성단체 ‘화이트 리본’을 만든 계기가 된 것이다. 이 후, 1991년 몬트리올에서 화이트 리본 본부가 생겼고, 이후 캐나다 지부 및 전 세계 60여 개국에 크고 작은 조직을 갖고 있다.

세계 최초 남성 페미니스트 단체라는 자부심을 갖는 만큼(이 말은 Mike가 다소 유머러스하게 한 점을 감안하면, 정확한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화이트 리본의 활동은 방대하다. 인근 초중고대학교와 연계하여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기도 했고, 지역 내에서 남성들을 위한 워크숍 및 캠페인을 꾸준히 벌였다. 초창기 ‘여성에게 가하는 남성들의 폭력 근절’에 초점을 맞췄던 모토는 점차 성평등 및 건강한 관계로 확장되었다. 이들의 정체성은 ‘페미니스트 남성 단체’로 확고했고, 지역 내 페미니스트 기관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Mike의 이야기를 듣던 중, 궁금증이 생겨났다. ‘어떻게 한 단체가, 그것도 페미니스트 남성 단체가 오랜 시간 지속될 수 있었을까?’ Mike는 세 가지 답변을 내놓았다. 첫째, 슬프게도 여성에게 가해지는 남성들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둘째, 남성들이 주체적으로 캠페인을 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전략을 세운다. 예를 들면, 정기적인 축구모임을 만들어서 멤버들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셋째, 시대의 변화에 따라 폭력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성평등 문제들도 포함하며, 성평등(gender equality)이 남성들에게도 ‘이로운’ 것임을 각인시킨다. Mike가 제시한 예들 중, 하나가 <일-생활/가정 균형>이었다.

가부장제는 유교적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문제이고 영국 또한 마찬가지다. 남성 가장 하에 여성 부인과 아이들 구조는 보편적이다. 다시 말하면, 남성 부양자(breadwinner)와 여성 가정주부(homemaker)의 가족 유형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질적 돈을 벌어오는 남성 부양자의 가정 내 권력은 막강했지만, 그들은 그들의 부인(여성 가정주부)과 아이들의 친밀한 관계로의 진입에는 실패했다. 영국은 다른 유럽국가 및 서구사회에서 비교적 일찍 ‘일-생활/가정 균형’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화이트 리본은 시대 흐름에 맞춰 캠페인 방향을 유동적으로 변화해 나갔다. 남성들이 가정 내에서 아이를 양육하고, 함께 놀고, 집안일을 함께 하며(‘도와주는 것’이 아닌!) 가족 구성원으로서 친밀성 실천의 중요성을 인식시켰다. 이러한 캠페인은 최소한 내가 살았던 요크 지역에는 유효했던 것 같다. 친한 기혼 아줌마 친구들네에 초대받아 집에 놀러 가면, 확실히 남편들의 육아 및 가사일 참여가 자연스러워 보였다. 여전히 나의 아줌마 친구들은 남편들의 가사일 참여 정도에 불평이 많았지만, 한국사회에서 30년 가까이 살다 간 유학생의 눈으로는 참 부러워했던 기억이 남는다.

이렇듯, 화이트 리본의 운동 범위는 방대하고, 운동 방향은 탄력적이며, 운동 자체는 지속적이다. 물론, 남성들의 여성폭력 근절은 여전히 화이트 리본의 핵심 정체성이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캠페인, 컨퍼런스, 워크숍 등은 훨씬 더 포괄적인 이슈들을 담아낸다. 세미나 이 후, 화이트 리본에 대해 많이 관심 갖게 되었다. 한국형 화이트 리본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성평등 및 일-생활/가정 균형 이슈까지 아우르는 한국형 남성 페미니스트 단체가 생기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