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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모 귀는 팔랑귀?

BY일생활균형재단

부모 귀는 팔랑귀?

글. 유 정 임 . <상위1프로 워킹맘> 저자
. FM 90.5 부산영어방송 국장

고민 없는 날이 없다. 하루에 한 가지 이상, 선택에 대한 고민이 이어진다. 자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지금 얘기할까 내일 얘기할까? 아메리카노를 마실까 라떼를 마실까? 돌아보면 선택은 늘 쉽지 않다. 프로스트의 詩 ‘가지 않은 길’처럼 어떤 선택에도 후회는 남게 마련이다.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결정장애. 무엇보다 자녀교육의 열정에 있어 둘째라면 서러울만한 대한민국 부모들에게 그 결정의 고민은 더더욱 깊어지게 마련이다.

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한 남자후배의 네 살 어린 아들. 어린이집에서 ‘모래놀이’를 가게 되었는데 아이는 한 번도 모래와 놀아본 적이 없다나? 행여 아이가 노는 방법을 몰라서 다른 아이에게 뒤쳐질까 걱정이 되었던 후배부부는 결국 모래놀이를 앞둔 일주일 전, 아이를 데리고 바닷가에 나가 노는 법을 가르쳤단다. 이 놀라운 열성을 두고 지나쳤다고 퉁박을 주었더니 곁에 있던 다른 후배가 한술 더 뜬다. 어린이집에서 소풍을 가게 되었는데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김밥을 먹일 일이 걱정이 되어 결국 사나흘 김밥먹이기 훈련을 강행했다나! 참, 열성이라 해야할 지 극성이라 해야할 지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스스로 해보기도 전에 기회를 잃어버리는 아이들. 내 아이가 남보다 더 잘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경쟁적 심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가방끈이라도 길어야 먹고 산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강요받았던 시절과 우리는 좀 다를 것이라 믿었는데 세상은 자식교육의 욕심에서는 요요현상이 여전하다. 아무리 마음을 내려놓고 느긋하게 버티려해도 아이에 대한 욕심은 조바심과 함께 변함없이 되돌아온다. 나 역시 다를 게 없었으니 계면쩍은 웃음이 일었다. 그 지나친 열정이 결정장애를 경험하게 했다.

신생아를 침대에 따로 재우는 것이 좋다는 의견과 직접 데리고 자는 것이 좋다는 갈라진 주장 앞에서 정작 아이엄마인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뭉기적대다가 시간을 보내야했다. 무엇이 더 옳은가? 결정은 항상 쉽지 않았다. 얼굴형이 예뻐지려면 아이를 엎어재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과 이불에 코라도 묻히면 위험하다며 바로 뉘라는 주장 앞에서 또 다시 결정 장애를 겪어야 했다. 외국인을 두려움없이 마주하려면 일찌감치 영어유치원을 보내야한다는 한쪽과 너무 일찍 영어를 접하면 오히려 언어교육에 혼선이 온다는 또다른 의견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결정은 쉽지 않았다.

도대체 어쩌라는 것인가. 짬뽕이나 자장면처럼 다시 시켜먹을 기회가 있는 일이라면 선택의 후회는 만회할 수 있을 터이지만, 자녀교육은 다르다.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그새 자란다. 부모의 가치관이나 소신을 만들 새도 없이 주위의 강한 주장들이 부모역할을 공격해왔다. 주변의 이야기들은 종종 부모의 귀를 팔랑귀로 만들며 많은 결정 장애를 반복하게 만들었다.

워킹맘의 바쁜 일상, 어떨 때는 시간에 쫓겨 결정한 선택들이 후회와 후회를 낳았다. 과연 잘 하고 있는 건가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나라 영재 엄마들을 1년간 집중 취재할 일이 생겼다. 왠지 특별한 비법이 있지 않을까?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소신과 가치관으로 아이교육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1년간의 집중 취재를 거쳐 얻은 정답은 아이러니하게도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는 확실한 육아 정답은 세상에 없었다. 그저 아이 각자에게 맞는 각각의 해법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끌거나 앞서가지 않고 스스로 하도록 현명하게 유도했다. 서툰 아이를 한걸음 뒤에서 지켜볼 줄 알았다.

취재를 통해 찾아 낸 육아비책은 무엇에도 휘둘리지 말고 아이의 특징부터 파악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각기 그 아이에게 맞는 육아법을 선택하면 되는 것이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큰아이에게는 똑같은 일도 세 배는 더 강하게 칭찬하며 자신감을 키워주었다. 여기저기 관심이 많아 집중력이 부족한 작은 아이에게는 책임감을 위해 믿어주면서 스스로 하도록 등 떠밀어 유도했다. 특성에 따른 해법으로 밀어 온 육아의 원칙. 이제와 각자 간절히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여 원하는 길을 가고 있으니 소신육아가 제대로 들어맞은 셈이다.

괴짜경제학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스티븐래빗은 육아법만큼 전문가들의 이해가 충돌되는 분야도 없다고 강조했다. 결국, 정답이 없다는 말이다. 천명의 엄마가 행하는 육아법은 천가지로 옳다. 어떤 엄마도 차선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고민 끝에 최선이라고 판단했다면 휘둘리지 말자. 팔랑귀가 되어 불안에 떨지도 말자.

단, 정성으로 지켜볼 일이다. 방법을 제시하되 앞서가지 말고 지켜보되 믿으며 인내해야 한다. 한걸음 늦더라도, 서툴게 다가오더라도 그 믿음이 굳건하다면 각 엄마의 육아비책은 세상에서 가장 옳은 단 한가지의 방법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