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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실 없고 눈치 보여… 직장맘 “모유 포기합니다”

BY일생활균형재단

올해 초 첫 아이를 낳은 뒤 석 달간 출산휴가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한 직장인 서모(33)씨는 최근 첫 돌 때까지 모유를 먹이려던 계획을 접었다.

‘모유가 아이 성장과 두뇌 발달에 좋다’는 얘기를 들어왔던 터라 직장에 다니면서 두 달 동안 유축기를 갖고 다니며 짬짬이 젖을 짰지만 그럴 때마다 “유난 떤다”는 곱지 않은 시선만 돌아왔다. 자주 자리를 비우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서씨는 “결국 낮에는 분유를 먹이고 퇴근 후에는 모유를 먹이기로 했다”며 “정부에서는 모유의 긍정적 측면만 강조할 뿐 왜 수유를 포기하는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10일은 저출산을 극복하고 임산부를 배려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정부가 법정기념일로 제정한 ‘임산부의 날’. 해마다 이맘때면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앞다퉈 전문가를 초청해 모유수유 교실을 열고 육아 관련 업체는 관련 용품 할인에 나선다. 하지만 모든 엄마가 모유수유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직접수유(직수)가 어려운 직장맘 중에는 미리 유축해 냉동시킨 뒤 낮 시간 모유를 먹이기도 하나 대부분은 착유 과정(젖 짜는 과정)부터 벽에 부딪힌다.

직장 내 제대로 된 착유공간이 없다는 점은 직장맘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다. 낮 시간대 직수가 불가능한 엄마들은 3,4시간에 한 번씩 젖을 짜 냉동 보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유축기와 모유저장팩, 냉장고(아이스박스) 등 용품과 독립된 공간이 필요하나 이런 시설을 갖춘 회사는 드물다. 현재 수유공간이 설치된 시설은 지하철, 고속도로 휴게소 등 전국 850여개 공공기관뿐, 대다수 기업에서는 ‘그림의 떡’이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오모(31)씨는 “비어 있는 회의실에서 유축을 하다 사내에 소문이 퍼졌다는 친구의 경험담을 듣고 화장실에서 젖을 짰다”며 “모유를 먹이고는 싶은데 굳이 비위생적인 환경에서까지 수유를 해야 하는지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설령 유축 공간이 있다 해도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회사에 수유실이 있다는 이모(33)씨는 유축 수유 한 달 만에 백기를 들었다. 한 번 착유할 때마다 소요되는 30분조차 동료들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이씨는 “미혼인 여성 상사마저 ‘하루 한두 번만 착유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며 “횟수를 줄이면 젖이 마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한 얘기겠지만 ‘놀고 있다’는 인식이 여전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에는 생후 1년 미만 유아를 가진 여성 근로자가 청구하면 회사는 하루 두 번씩 각각 30분 이상 유급 수유시간을 주도록 명시돼 있으나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2014년 인구보건복지협회가 20~50대 여성 565명을 상대로 모유수유 실태를 조사한 결과, 모유 수유가 어렵다고 한 응답자 중 32.2%가 ‘업무 중 착유시간 부족’을 이유로 꼽았고, 이어‘착유공간 부재(27.1%)’가 뒤를 이었다. 직장 내 모유수유에 대한 몰이해가 수유 포기로 이어지는 셈이다. 2012년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도 육아휴직 중이거나 비취업 여성의 완전 모유수유 비율은 55%에 달한 반면, 출산휴가 후 복직한 여성은 24%에 그쳤다.

결국 유축시간을 보장하고 기업에 착유시설을 설치하는 등 법적ㆍ제도적 뒷받침이 돼야 모유수유가 정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손숙미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은 “사회 각 분야에서 여권 신장이 이뤄졌음에도 유독 육아에 관한 한 우리의 직장문화는 가정친화적이지 않다”며 “수유 단계에서부터 여성들이 마음 놓고 자녀를 양육하는 환경이 조성돼야 고질적인 저출산 문제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