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부부가 아니라 '주말부모'가 됐어요"
“저희는 직장 때문에 주말부부가 아니라 ‘주말부모’가 됐어요.”
경기도 파주시에 사는 최모(32·여)씨는 5살 난 딸과 떨어져 지낸다. 딸은 경북 구미에 있는 시댁에서 봐주신다. 구미에서 남편과 같은 회사에 다녔는데 올해 부부가 모두 파주로 인사 발령이 나면서부터다. 최씨는 “지인도 없는 파주에서 (딸을) 믿고 맡길 만한 곳이 없다 보니 고민 끝에 시어머니께 부탁드렸다”며 “그래도 기꺼이 아이를 돌봐주신다고 하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말했다. 부부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매주 구미에 내려가 딸과 시간을 보낸다. 몸이 힘든 건 상관없지만 파주로 돌아올 때마다 떨어지기 싫어 울고 매달리는 딸을 보면 ‘이렇게까지 살아야하나’란 생각에 눈물을 쏟곤 한다. 최씨는 “딸이 요즘 ‘동생을 하나 낳아달라’는 말을 자주 한다”며 “남편도 그렇고 마음 같아서야 아이를 하나 더 낳고 싶지만 둘 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렸다”고 씁쓸해했다.
우리 사회에서 저출산이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 하에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선 지 10년이 지났지만,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권 수준이다. 저출산 현상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적되는 2030세대의 고용과 소득 문제, 주택과 보육환경 등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청년들까지 늘면서 ‘출산은 백해무익’이라는 자조까지 나오고 있다.
9일 통계청의 ‘인구동향’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8월까지 출생아 수는 28만31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9만9900명)에 비해 1만6800명이 감소했다. 8월 기준 누적 출생아 수가 28만명을 기록한 것은 2000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최근 인구보건협회가 발간한 유엔인구기금(UNFPA)의 '2016 세계인구현황' 한국어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3명(2015년 통계청 기준은 1.24명)으로 세계 평균치(2.5명)에 크게 못 미칠 뿐 아니라 전 세계 국가 중 꼴찌에서 4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전 세계 인구성장률은 1.2%로 집계됐는데, 우리나라의 인구성장률은 이보다 크게 낮은 0.5%였다.
이와 같은 저출산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06년부터 ‘1·2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통해 저출산 분야에 총 80조7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바 있다. 그러나 비용 대비 효과는 미미했다는 지적이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통해 저출산 분야에 다시 109조4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지만, 벌써 정책에 대한 실효성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기본계획 시안을 발표했을 때 유명 인터넷 육아 카페 등에서는 “높은 주거비와 교육비를 잡아야 하는데, 핵심이 없는 지엽적인 대책 뿐”이라는 글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서울의 한 물류회사에 근무하는 결혼 2년차 김모(29·여)씨는 “선생님이나 공무원처럼 육아휴직이 비교적 확실한 사람들이 부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육아휴직 이후에 회사에 제대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육아랑 일을 병행할 자신도 솔직히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저출산 대책에 대해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결국 나처럼 경력단절 문제나 아이를 낳고 나서도 걱정 없이 육아와 일을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정책들이 핵심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난 8일 광화문에서 전국여성연대가 “이런 나라에서 아이를 낳을 수도 키울 수도 없다”며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전국여성연대는 보도자료를 통해 만 0∼5세 자녀를 둔 부모 1425명을 상대로 현 정부 보육정책 만족도를 설문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는데, 응답자들은 정부의 정책에 대해 ‘매우 불만족’하다는 답변이 61.1%(870명), ‘불만족’이 27.9%(398명)로 총 89%가 부정적 답변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문제에 대해 보다 현실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조주은 국회입법조사처 사회문화조사실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우리나라는 10여년에 걸친 기간 동안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저출산 대응책을 시행해 왔지만 정책의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며 “향후 우리나라의 저출산 보완대책은 결혼 혹은 출산을 미루게 만드는 청년실업, 주거문제와 교육문제 등의 해결을 모색하는 사회정책적 조망 하에서 종합적으로 수립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선권 입법조사관도 “출생아수 40만명대 유지를 목표로 하는 인구·출산 정책을 개발하면서 선택과 집중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