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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16년 03월 칼럼] 남성과 아빠 사이

BY일생활균형재단

남성과 아빠사이

방송작가 이재국


“결혼한다고 철이 드는게 아니라, 아빠가 되야 철이 든다”

육아 책을 쓰면서 이런 말을 과감하게 하고 다닌 적이 있다. 때론 눈물나게 행복하고, 때론 콧물나게 힘든 육아를 경험해봐야 비로서 철이 들고, 내가 진짜 아빠가 됐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그렇게 육아를 경험하고 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성이라는 섬에서 아빠라는 섬으로 건너오게 된다. 처음엔 아빠가 됐다는 사실이 좋다. 나를 닮은 눈, 나를 닮은 손가락, 나를 닮은 코, 모든게 신기하기 때문에 출근하다가 들어와서 다시 한번 아이 얼굴 보고 가고, 회사에 일하면서도 계속 전화해서 잠은 잘 자는지, 쉬는 잘 싸는지 물어보고, 저녁이 되면 소고기 회식도 마다하고 집으로 달려온다. 그리고 아빠가 되고 나서야 이해하는 말이 몇가지 있다. “아이를 눈에 넣어도 안아프다는 말!” “안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말!” “아이만 보면 하루의 피로가 확! 풀린다는 말!” 그런데 아이가 기어다니고 아이가 말을 하면서부터 아빠들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친구같은 아빠가 되고 싶었는데, 어느날 부턴가

나도 모르게 <아빠가 니 친구야! 어디 아빠한테 까불어!> 라는 말을 하고 있다!”

아빠가 되기 전에는 대부분 남자들은 “친구같은 아빠”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아빠가 되고나면 아이와 친구처럼 지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고, 곧바로 아이를 자기 직원이나 아랫사람 대하듯 하게 된다. 왜 그럴까? 이유는 남자와 아빠 사이에 “함께하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까운 동네 사는 친구라도 “함께하는 시간”이 없으면 친한 친구가 될 수 없다. 하물며 같은 집에 살아도 “함께 하는 시간”이 없으면 친구가 될 수 없다. 이 사회는 아빠도 바쁘고, 엄마도 바쁘고, 아이들도 바쁘다. 시간이 많은 사람은 왠지, 할 일 없는 사람처럼 바라보고, 이 사회에 필요없는 잉여처럼 바라본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 일단 바빠야 대접을 받고, 바쁘게 살아야 “살아있다”고 느낀다. 이렇게 바쁘게 흘러가다보면 아빠와 아이가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어느새 가족이라는 말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어릴 때는 이러지 않았다. 아침 밥상에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있었고, 저녁 밥상에도 늘 온가족이 모여 있었다. 하물며 치킨 한 마리를 먹을 때도 온 가족이 모여서 먹으며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그게 없어졌다. “함께하는 시간”이 없다보니 친구같은 아빠는커녕 친한 아빠 되기도 힘들다.

“평범한 가정, 평범한 아빠가 되는게 제일 힘들어”

어느날 저녁, 방송이 끝나고 집에 가는데 우리 동네 작은 연립주택 창문에서 “꺄르르르” 아이 웃음소리가 들렸고 잠시후 “빨리 와서 밥먹자!”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창문 아래서 한참을 서 있었다. 창문너머 가족의 모습이 보이진 않았지만, 왠지 어릴 때 우리집 저녁 풍경이랑 비슷한 거 같아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내가 어릴 때는 저녁이 되면 온 가족이 내복을 입고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었고, 저녁을 먹고 나면 잠시 후 일일 드라마를 한 후에 “어린이 여러분은 잠자리에 들 시간”이라는 공익광고가 나온 후, 9시 뉴스를 시작했다. “어린이 여러분은 잠자리에 들 시간”이라는 공익광고가 나오면 형 누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눈을 감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고, 유일하게 아버지만이 저녁 뉴스를 보실 수가 있었다. 그 시절에는 대부분 저녁 시간의 풍경이 비슷했고, 이 모습이 가장 평범한 모습이었는데 요즘은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그 연립주택 창문 아래서 한참을 서 있다가 집에 왔는데, 우리 집은 썰렁했다. 직장에 간 아내는 아직 퇴근을 안했고, 초등학교 1학년 딸 아이는 외할머니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다고 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그토록 평범했던 저녁 풍경이 지금은 왜 이렇게 달라진걸까?

일단, 아빠들이 너무 바쁘다. 아침에는 회사에 출근하기 바쁘고,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느라 바쁘고, 저녁에는 야근도 해야하고, 여기저기 술자리에 불려다니느라 바쁘다. 아빠들은 주말이 되면 좀 쉬고 싶지만, 아빠들은 주말에도 바쁘다. 다른 집처럼 캠핑도 가야하고, 친구나 직장동료 경조사에도 가야하고, 평일에 밀린 피로를 풀기위해 잠자느라 바쁘다. 그리고 슬픈 건, 이 바쁨이 끝나고 시간이 많은 아빠가 되면, 이번에는 아이들이 바빠서 아빠와 함께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할 시간, 그리 많지 않다!”

아이가 세네살이 되면 말을 하기 시작하고, 예닐곱살이 되면 제법 대화가 통한다. 아빠들은 이때가 제일 즐겁다. 그런데 초등학생이 되면 서서히 말대꾸도 하고 아빠 말을 잘 안듣기 시작하다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또래 문화가 생기기 때문에 아이들이 아빠곁을 떠나간다. 그렇게 따지면 아이와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 서너살부터 열 살 정도까지 6-7년 밖에 없다. 이 기간에 아이와 친하게 지낸 아빠는 평생 <친구같은 아빠>가 될 수 있지만 이 기간에 아이와 친하게 지내지 못하면 <친한 아빠>도 되기 힘들다. 아빠들은 아이와 많이 놀아줬다고 생각하고 아이와 친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빠들의 착각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가 많아도 내가 놀자고 했을 때 같이 안놀아주면 그 친구는 친한 친구가 아니다. 아빠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함께 놀고 싶다고 했을 때 함께 놀아줄 수 있어야 친구같은 아빠가 될 수 있다. 대부분 아빠들은 자기 기준에 맞춰서, 자기 쉬는 날, 자기 몸이 편한날 아이랑 놀려고 하다가 아이가 안놀아 주면 “거봐! 내가 놀아준다고 해도 싫다고 하잖아!” 이렇게 핑계를 대고 만다. 아빠와 아이가 친해질 수 있는 시간, 고작해야 6-7년 밖에 안된다. 그 시간만이라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자.

“남성과 아빠 사이에는 아이가 있다!”

남자들은 죽을 때까지 고민할 것 같다. 나는 남자인가? 아빠인가? 아이가 있다면 아빠고 아이가 없다면 남자다. 남자와 아빠 사이에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처럼, 남자는 포기할 수 있지만 아버지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 아버지가 흔들리면 가족이 흔들린다. 그래서 아버지는 포기하면 안되고, 아버지는 강해야한다. 그리고 아직도 남성과 아빠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자가 있다면 아빠라는 섬으로 건너오라고 하고 싶다. 왜냐하면, 아빠라는 섬에 훨씬 큰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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