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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16년 05월 칼럼] 창조경제와 일-생활 균형

BY일생활균형재단

 창조경제와 일-생활 균형

 

한국일생활균형정책연구소 백다례 대표

 

  1. 제4차 산업혁명 시대가 시작되었다

최근 다보스 포럼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은 그의 저서 제4차산업혁명에서 “혁명의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라고 선언하고 이미 변곡점을 찍고 거대한 혁명의 닻이 올려 졌다라고 단언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 혁명은 새로운 ‘기술문명’의 시대로, 빅데이터, 로봇공학,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사이버안보, 3D프린팅, 공유경제, 블록체인 등이 주요기술이며 과학기술 영역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만들어낸 충격적인 합작의 결과물들이 지금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기술이 융합하여 물리학, 디지털, 생물학 분야가 상호 교류하는 제 4차 산업혁명은 종전의 그 어떤 혁명과도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하는 특성을 지니는데 이것의 결과로 정치, 경제, 사회체제에 본질적인 변화가 초래되어 지금까지의 인간의 삶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혁명적인 신기술의 도래에 대응하는 새로운 세계관과 인류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와 전망이 지금처럼 부재한 상태에서는 새로운 기술혁신의 결과는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염려한다.

유인원에서부터 사이버보그까지 인간의 역사를 기술한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노아 하라리는 제 4차 산업혁명, 즉 작금의 과학혁명의 특성이 미친 영향 때문에 인간이 처한 그리고 처할 현실을 좀 더 실질적인 예를 들어서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즉 “19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는 새로 대두한 노동자 계급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 있었다면 이제는 인공지능(AI) 발전으로 일자리가 없어진 ‘잉여인간’ 수 십 만 명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청년들에게 실제로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 지금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아무도 답을 줄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과학기술의 혁명이 몰고 올 사태의 본질 중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삶(노동)의 문제 측면을 예견해준다.

결론적으로 클라우스 슈밥의 표현대로라면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 “깊고 넓은....극적인 과학기술“의 혁명으로 인한 변화에 대한 인류사회의 대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신성장동력 산업을 주도할 수 있는 노동역량, 즉 창조적 역량 개발의 문제이자 사람 대신 과학기술이 대체됨으로써 사라질 일자리의 문제로 압축될 수 있다. 즉 새로운 과학혁명이 인류에게 복리로 귀결되기 위해서는 일과 삶 전반에서 기술혁명에 발맞출 수 있는 세계관을 정립하거나 유발 노아 하라리의 주장처럼 과학기술의 발전을 두려워 말고 인문학, 철학, 심리학 등에서 인간 정체성을 찾고 삶의 의미를 새롭게 재구성 할 것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좀 더 단순하게 말하자면 개개인들의 일(노동)과 삶(생활)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문제라고 말 할 수 있다.

창조경제는 제 4차 산업혁명이 배경과 기반

박근혜 정부의 4대 국정과제 중 하나이자 핵심경제 정책인 창조경제는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을 배경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정의하는 창조경제란 “과학기술과 산업이 융합하고, 문화와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 간의 벽을 허문 경계선에 창조의 꽃을 피우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시장을 단순히 확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융합의 터전위에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창조경제의 중심에 과학기술과 IT산업이 있다”(2013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사 중에서). 즉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는 실질적으로 현실화 되고 있는 제 4차 산업혁명 속에서 새로운 가치사슬 창출을 통해 경제성장을 추동하고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데 있다.

창조경제에서는 특히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된다. 이는 산업화 시대가 노동과 효율에 가치를 두었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지식(아이디어)과 기술'에 노동의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창조경제의 핵심을 아이디어나 창조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이라고 강조한 배경이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산업 환경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자본력보다 사람의 능력이 우선시 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인데, 예를 들자면 세계경제포럼의 <직업의 미래 보고서>는 2020년에는 복잡한 문제 해결능력, 사회적 기술과 시스템 기술이 육체적 능력이나 콘텐츠 기술보다 더욱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즉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일이나 창의적 아이디어를 개발해야 하는 사회적, 창의적 직업군은 미래에 실현될 자동화로 대체될 위험도 적다.

정리하면, 현재 지구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과학기술의 혁명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예측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미 새로운 과학기술혁명의 여파가 우리의 삶 내부로 점차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특히 노동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는데 노동역량의 조건이 새로운 기술혁신이 요구하는 ‘창조성’에 더욱 의지하면서 고학력자들이 찾는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기술이 인간의 일자리 대부분을 대체할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제 4차 산업혁명이 일 방식, 사회관계, 생활양식 전반에서 인간의 삶을 바꿀 것이라는 클라우스 슈밥의 예언은 일상의 삶의 편리성 증대, 그리고 저성장 늪에 빠진 세계경제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 기대와 함께, 구조적인 실업과 고용불안정, 그리고 양극화 심화로 그 어두운 일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회전반에 불안과 불신이 확대되고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과학기술 혁명으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으로까지 진행된 과학혁명의 거대한 물줄기가 긍정적으로 흐르는데 심각한 장애요소로 작동 될 여지를 안고 있는 것이다.

  1.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불확실성 시대와 삶 풍경

미래에 대한 전망은 오늘의 문제(삶 방식)에 기반 하여 분석할 때 더 구체적이 된다. 따라서 우리사회, 그리고 각 개인과 가정-기업조직들은 현재 새로운 시대에 직면해서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또 적절한 대응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즉각적이고도 좀 더 구체적인 방식으로 진행시킬 필요가 있다. 질문이란 시의성과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고전 철학자 헤겔은 불안과 공포는 시대적으로 경제공황이나 사회변동기와 같이 기존의 상징질서가 흔들릴 때 나타나는데 방향이 상실된 세계에서 불확실성에 빠진 개인들은 필연적으로 불안을 느끼고 그것이 사유의 능력을 마비시킬 정도의 공포로 이어진다고 주장한 바 있다. 현재도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과학혁명 그 자체라기보다 이 과학혁명이 초래할 미래 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변화를 가늠하지 못한다는 데 있으며, 개개인들은 이미 소위 세계화에 그 책임을 전적으로 지울 수만은 없는 성질의 것으로서, 전 산업과 계층에 걸쳐 고용불안정과 양극화의 심화를 경험하고 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이러한 불확실성의 증가와 불안이 급속한 고령화와 맞물리면서 여타 선진국들보다 더 심각한 결혼 기피 및 만혼현상으로 나타나고 있고 출산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단적으로 우리사회 불안정성 지수를 낮은 출산율에 대입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은 젊은이들이 미래의 인구인 자식을 낳는 문제는 어떤 요인보다도 현재 상황에 대한 자기통제(감),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사회를 점검해보면 자신을 둘러싼 사회변화에 대한 인식과 통제력을 발휘하는데 있어 일차적인 장애요인은 부모세대나 청소년 자녀세대 모두 장시간노동과 학교 공부에 매달려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사회 전반이 절대적인 생활시간부족과 질적인 여가부족 상황에 놓임으로써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시도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 한마디로 “너무 바빠서” 당장의 앞가림에 급급하고 무엇을 인지한다는 것이 여의치 않은 상황인 것이다.

먼저 일하는 사람(부모, 자식, 배우자)들의 장시간 노동 수준은 2016년 현재도 세계 1위 자리에 있다. 그런데도 효율은 OECD의 평균에 3분의 2에 그친다(‘2015년 생산성 지표의 개요’, OECD). 기업의 조직 건강도(OHI : Organizational Health Index)도 당연히 글로벌기업들에 비해 적신호 수준이다(대한상의.맥킨지 공동조사, 2016). 이는 당장에 있어서는 산업구조 고부가가치화에 실패한 것이고, 향후 미래를 대비한 체질개선의 기반도 현저히 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미래를 짊어질 소위 인적자원들인 청소년들도 그의 부모들처럼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을 들여 학교 공부를 한다. 부모와 마찬가지로 장시간이라는 물리적 힘을 더 쓰는 방식인데 부모(사회)로부터 배우고 학습당한 결과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청소년들의 자살율도 최고이다. 문제는 이렇게 한 공부 끝에 희망하는 직업(꿈)은 공무원, 건물주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이는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총체적인 문제가 결과한 산물이지만 가깝게는 불확실한 미래와 현재의 일자리 부족에 대한 불안이 미친 영향이다.

사회 구성원들 모두 장시간 노동과 학교 중심 공부로 사회변화에 대한 인식이나 미래를 전망하는 것 자체가 막혀 있는 현실

이처럼 현재 우리 사회구성원 일반은 단기적이고 즉자적인 사고와 판단을 하면서 번-아웃(기운의 소진상태) 지경까지 질주하는 방식으로 살고 있다. 누구나 다 고민하는 문제이지만 지금 시대는 100세까지의 생을 고려하는 안목과 호흡이 중요하다. 우리 자녀들에게는 70-80년이라는 미래 시간의 문제이고 그들 부모들은 30-50년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 달린 문제인데도 삶의 여정을 바라보는 태도나 실행방식은 여전히 너무도 단기적인 안목에 그치고 있다. 결과적으로 부모나 자녀 모두 늘 부족한 여가시간, 그리고 유흥적 여가문화는 자신을 돌볼 여유조차 없는 상태에서 단지 즉흥적이면서 파괴적인 방식으로나마 기력을 추스르는 방법을 선택하게 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성인들은 한 주 기준으로 미국인(3잔), 러시아인(6잔)보다 훨씬 많은 14잔을 마시느라 하루 평균 독서시간이 단 6분에 불과하다는 통계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1999년보다도 더 줄어든 시간이다. 삶의 기본 조직인 가정 내 부부관계는 “일이 바빠서” 3쌍 중 한 쌍은 하루 30분도 대화를 하지 못하고 산다. 대화는 관계의 질을 결정하는 일차 요소인데 말이다. 놀 줄 모르는 건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아이들도 놀 시간도 부족하지만 놀 시간이 있어도 어떻게 놀 줄 모른다. 대개가 게임-채팅을 중심으로 논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사회는 경제 덩치(물질적 부)는 커졌지만 삶은 더 움츠려 들고 삶의 질이 더 나빠진 상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먹고 살만해 졌음에도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쫒기는 것은 지난 산업화 시기인 50년 동안의 압축적 고도성장 방식이 우리의 삶 속에 내재된 결과이자, 지구차원에서 끊임없이 속도를 내는 혁신과 경쟁체제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인은 여타 국가들에 비해서 주관적인 행복지수도 매우 낮다. 최고의 자살율은 이제 뉴스의 주요 이슈 순위에서도 밀려 날만큼 일상이 되었고, 정신질환자는 암과 같은 질병이 감소한데 반해 점점 늘어나고 질도 나쁘다(보건사회연구원, 2016). 많은 연구보고서들의 주장을 떠나서 행복감(삶의 만족감)과 자기통제감은 서로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경험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장시간 노동과 학교 중심의 공부와 같은 산업화시대(포드주의 방식)의 전형적인 생산방식과 삶 전략은 평범한 행복에도 이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과학기술 혁명 시대와도 맞지 않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앞서 제기한 대로 삶의 만족이란 현재 상황에 대한 자기 통제력과 이를 기반으로 한 미래 예측과 준비라고 할 때 우리사회는 이 모든 것이 멈춰진 상태로 지난 산업시대에 받아들인 삶의 방식에 관성적으로 몸을 맞기고 어디론지 모르는 곳으로 밀려가는 형국인 것이다.

  1. 어떻게 할 것인가: 새 시대는 일과 생활의 균형과 함께

그렇다면 새 시대에 대응하면서 앞서 제기한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도 해결하는 방법은 있는가? 다시 말해 산업화시대, 압축적 고도 성장기에 내재한 노동과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는데 적절한 삶의 방식이란 어떤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당장 취할 수 있는 방법인가이다.

최근 한국산업의 미래를 위한 제언서로 서울공대 26명의 석학이 공동 발간한 ‘축적의 시간’은 이러한 질문에 논리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 저서의 핵심 주장은 한국의 구조적 저성장, 그리고 빠르게 진행되는 과학기술 혁신, 이에 따른 국제경쟁 관계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창조적 개념설계 역량을 키워야만 한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여기에서 창조적 개념설계란 “문제 자체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역량을 키우려면 산업계뿐만 아니라 사회전체의 시스템이 바뀌어야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창조적 개념설계 역량은 창조적 ‘축적’을 전제로 하며, 창조적 축적이란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아닌 반드시 오래 된 기간 지속적으로 시행착오를 ‘축적’해야만 얻어진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그간 한국의 발전모델이 숙성된 경험축적보다 빠른 벤치마킹 능력에 의존하여 압축적인 고도성장을 이루어 내느라 그 과정에서 경험하지 못한 창조적 축적이라는 고루한 과정을 시작해야 하는 이중과제를 안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미 수 백 년의 축적을 이루어낸 선진국들과의 경쟁하려면 산업차원의 축적노력만이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의 틀을 바꾸어 국가적으로 축적해 나가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자면 창조적 축적 방법은 시행착오를 축적하기 위해 지리한 과정(시간)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성공의 방정식, 즉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자원을 동원하고 정해진 목표를 조기에 달성하던 습관에서 벗어나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시행착오과정과 결과를 꼼꼼히 쌓아가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일차적으로 현재의 노동과 삶 방식의 개선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단기적 효율만을 중시하는 장시간 노동과 학교 공부 중심의 획일적 교육으로는 창조적 축적을 뒷받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산업혁명의 시대에 대응하는 과정은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산업시대의 삶 방식에서 문제가 되는 지점들, 즉 생활과 여가보다 노동에 치우진 삶, 학교 내에서 장시간 이루어지는 입시위주의 획일적 교육이 미래전략이 되는 삶 방식을 완화시킴으로써 삶의 질을 좀 더 개선하고 창조적 역량을 제고시키는 일석이조의 과정이 될 수 있다.

일과 생활의 균형은 창조경제의 핵심인 창조역량의 토양이자 삶의 질 개선 전략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도 없이 창조력의 바탕은 놀이와 문화이며 놀이와 문화는 적당한 일과 여가시간의 균형이 전제될 때 가능하다. 또한 쉰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새로운 비전을 설정하고 창의성을 개발하여 개인의 경쟁력을 제고 하는 시간이며, 또한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일에서 받은 압박이나 긴장, 우울증 등을 해소하는 시간이다. 사회 전체는 이를 통해 구성원들 간의 신뢰와 연대를 강화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일상의 안정성과 긍정성을 높이기도 한다. 현재 창조경제가 문화융성전략을 국정기조로 위치시키고 여가활성화기본법 제정을 통해 여가를 촉진하는 등, 일과 생활 균형 정책 강화에 주안점을 두는 배경이다. 더욱이 일과 생활 균형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쏟아짐에도 낮은 실효성에 그치는 원인이 장시간 노동문제와 함께 노는 방법과 경험의 부재에 있다는 지적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방식과 체질의 전환에는 개인과 사회차원에서 긴 시간에 걸친 반복 훈련이 요구된다는 것이며 국가정책이 총체적으로 이것을 지원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던지고 갈 기본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 나는 누구인가?
  •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 어디로 갈 것인가?
  • 어떻게 갈 것인가?
  • 거기에 도착하면 무엇을 얻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