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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칼럼] 24시간 사회, 더욱 곤란해질 일-생활 균형의 문제

BY일생활균형재단

24시간 사회, 더욱 곤란해질 일-생활 균형의 문제

 

 

 

 

김영선 자문위원

 

 

 

24시간 사회는 멋진 신세계?

‘밤이 없는(不夜)’ 24시간 사회는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신세계다. 여기서 밤이 없다는 표현은 물리적 차원의 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밤이 없다는 의미다. 낮과 밤, 활동하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의 구분이 무의미해졌고 시간의 순차성과 주기성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을 지배했던 순차적 시간리듬이 해체된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24시간 사회는 그야말로 가처분시간이 무한히 확대된 ‘멋진 신세계’로 여겨진다. 실로 24시간 사회는 확대된 시간을 마음껏 편집할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나아가 소비, 편의, 효율, 경쟁력, 자기계발의 논리로 채색되곤 한다.

그런데 24시간 사회로의 변화는 가처분 시간의 확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연리듬에 따라 주기적이었던 삶의 패턴이 총체적으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사회문명적 변화까지 내포하고 있다.

한국사회라는 사회적 맥락에서 그 변화는 분명 노동세계의 변화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90년대 중반 경제위기 이후 심야 서비스직을 비롯해 야간교대와 같이 이전과는 다른 비표준 형태의 노동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과거 ‘특수한’ 형태로만 여겨지던 야간 노동이 ‘일반적인’ 형태로 변화했다. 교대근무하는 제조업 노동자를 비롯해 간호사, 경찰, 소방관, 택시기사, 철도 노동자, 발전소 직원 및 경비원 등 통상적인 야간 노동자에서부터 편의점, PC방, 찜질방, 노래방, 김밥천국, 커피숍, 심야약국, 청소, 심야버스, 대리운전, 24시간 어린이집 등 다양한 부문에서 야간 노동자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야간 노동은 이제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아빠는 잠만 자는 아빠야!

야간 노동자의 아이에게 ‘아빠는 어떤 아빠야?’라는 질문에 “아빠는 잠자는 아빠”라는 대답은 야간 노동으로 인한 자식과의 관계가 독특하게 모양지어진다는 점을 씁쓸하게 보여준다. 부부관계와 관련해 남편에게 들을 수 있는 말은 “피곤하다”는 한숨뿐이고 섹스는 ‘벌건 대낮에만’ 해야 한다는 푸념은 야간 노동에 따른 부부관계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멀면 정(情)도 멀어진다”는 속담은 일상적인 사회관계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야간 노동자에게도 해당된다. 야간 노동으로 사회적 리듬과 분리되면서 사회관계가 협소해진다는 이야기다. 야간 노동은 이렇게 부모-자식관계, 부부관계, 사회관계를 독특하게 모양짓는다.

그 동안 야간 노동에 따른 건강 문제는 많이 제기되어 왔다. 교대근무자의 건강에 대한 연구를 보면, 교대근무자 가운데 절대 다수가 수면장애를 호소한다. 야간 노동을 ‘또 다른 이름의 발암물질’로 규정해 그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는 국제암연구소의 연구나 야간 노동자의 수명은 일반 노동자에 비해 10년 이상 짧다고 보고한 독일수면학회의 연구를 되새겨 봐야한다. 이에 국제노동기구는 “의학적 측면에서 야간 노동에 종사하는 시간을 줄이지 않는 한, 교대근무를 순환식으로 하건 고정적으로 하건, 그 어떤 변화로도 해악을 줄일 수 없다. 가족과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교대근무 스케줄을 조정하는 방법은 하루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아무리 노동시간을 줄인다 해도 생리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야간 노동을 하면서도 건강을 해치지 않기 위한 대안은 없다.”고 경고한다. 이들 연구는 야간 노동과 건강 간의 부적인 상관관계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이후 노동의 세계가 급변하는 가운데 야간 노동의 비율이 빠르게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연구는 노동시간의 ‘길이’에 집중되어 있다. 노동시간의 길이는 여전히 중요한 이슈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24시간 사회에서 야간 노동이라는 시간 구조가 갖는 위험성과 확산 속도를 감안해 볼 때, 관련 연구가 빈약한 게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야간 노동을 여타 노동스케쥴과는 구분되는 특수한 형태의 노동시간으로 규정하고, 다시 말해 일종의 사회적 사실(social facts)로 포착하고 그것이 우리의 삶과 일상에 야기하는 문제들을 전면에 드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야간 노동의 확산은 새로운 시간세계를 만들고 있다. 일례로 24시간 어린이집은 새로운 시간세계의 상징일 것이다. 과거 ‘결손’ 가정의 아동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운영되었던 24시간 어린이집이 이제는 전체 영유아를 대상으로 확대되었고, ‘세계 최초’, ‘국내 최초’를 내세우며 앞 다퉈 개설되고 있다. ‘24시간 365일 무한 돌봄’을 표방하며 24시간 가동되는 어린이집은 서울시에만 100여개에 달한다(광진구 16개, 강동구 14개, 관악구 8개, 송파구, 강서구 7개 등)(2012년 기준). 24시간 어린이집은 야간보육교사, 야간 노동하는 부모, 24시간 맡겨진 아이까지 노동문제, 돌봄문제, 보육문제들이 집약된 곳이다. 또한 야간 노동자의 육아 고충을 여실히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일상이 서로 엇갈리는 삶

노동시간과 일상시간의 관계 측면에서 야간 노동이라는 시간 구조는 우리의 생활세계를 색다르게 모양짓는 요소다. 그것은 단순히 노동시간표만의 차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야간 노동은 통상적인 노동시간과는 전혀 다른 특징을 갖는다. 낮과 밤이라는 주기적인 삶의 패턴을 뒤흔들어 24시간 생체주기를 변화시키는 것은 물론 부부관계, 부모-자식관계, 사회관계, 여가패턴 심지어 육아방식 및 존재양식까지 총체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특정한 생활리듬이 반복되면 거기에는 일정한 패턴이 생겨나고, 그 고유한 패턴은 스스로 존재가 된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야간 노동자들에게 사회적 리듬과의 불일치, 그에 따른 사회관계의 단절은 너무나도 고유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24시간 사회에서 우리가 노동시간의 ‘길이’ 뿐만 아니라 노동시간의 ‘배치’ 문제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관계’의 측면에서 비표준형태의 노동과 가족관계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해리엇 프레써는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커플 중 한 명은 낮에 일하고 나머지 한 명은 저녁에 일하는 커플을 태그팀 커플(tag­team couple)이라고 일컬었다. 마치 2인 1조로 태그 매치하는 레슬링 선수처럼 일하는 현장으로 바통을 터치하면서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의 모습을 빗댄 말이다. 통상 이야기되는 ‘주말 부부’처럼 공간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부의 노동시간표가 달라 평일에도 얼굴을 마주 대하거나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 힘들기는 매 한가지여서 주말 부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로 일하는 시간대가 다르기에 삶의 모든 부문이 총체적으로 엇갈린다는 이야기다. 맞벌이 부부의 노동시간‘량’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노동시간의 ‘배치’와 그에 따른 관계 변화 그 자체가 더욱 문제인 것이다. 여느 맞벌이 부부와 같이 노동시간 총량이 80시간(남자 40시간 + 여자 40시간)이라하더라도 태그팀 커플의 삶의 성격은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야간 노동이 일상화된 현재에 노동시간의 ‘배치’와 그에 따른 삶의 변화(야간 노동에 따른 가족관계의 변화 그리고 여가패턴의 특징)를 고민해야하는 이유다.

길고 불규칙한 야간 노동으로 야간 노동자들에게 육아는 고충 가운데 고충으로 여겨진다. 야간 노동자들에게 돌봄의 권리는 매우 취약하고 ‘일-생활의 균형’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에 우리는 ‘관계’의 관점에서 야간 노동이 가족관계/사회관계에 미치는 전이 효과(spillover effect)를 전면에 드러내고, 정책적으로는 다양한 시간 구조에 따라 ‘균형’ 의제를 세분화해야 필요가 있다.

태그팀 커플을 비롯해 태그팀 육아(tag-team parenting), 사회적 리듬과의 분리(social separation), 사회생활의 주변화(social marginalisation), 비동기화에 따른 사회적 관계의 탈동조화(decoupling), 사회적 고립(social isolation), 일과 가족의 갈등(work-family conflict), 역할 과부하(role overload), 부재 효과(absence effect), 수동적 여가(passive leisure), 소비집약적인 생활양식(consumption-intensive life style), 여가제약(leisure constraints), 전이 효과(spillover effect) 등과 같은 개념들은 야간 노동이라는 독특한 시간 구조가 빚어내는 사회적 현상들을 잘 포착하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24시간 사회에서 부쩍 증가한 야간 노동으로 노동자들은 일-생활의 균형을 이뤄내기가 더욱 쉽지 않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노동자의 ‘건강권’, ‘일과 생활의 균형’의 권리를 쟁점화해야 한다. 현재의 정책이나 제도는 24시간 사회의 변동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스물네시간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 아줌마는 누가 돌봐주는가? 스물네시간 아파트 주민을 지켜주는 경비 아저씨는 누가 지켜주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야간 노동자의 건강권과 일-생활의 균형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