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 6년차인 강모씨(30·여)에게 임신은 축하받을 일이 아니었다. “우리 때는…”으로 시작되는 상사들의 눈치에 지난달 육아휴직 9개월 만에 회사로 복귀했고, 지금은 아침 9시부터 저녁 7~8시까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놓은 채 일에 파묻혀 지내고 있다. 시차출퇴근제, 전환형 시간선택제 등 유연근무제는 그저 남들 이야기다. 강씨는 “회사에서 한 번도 그런 제도를 안내해준 적이 없다. 인터넷이나 뉴스를 보고 알았다”며 “회사에서 시간선택제 같은 걸 운영한다면야 당연히 신청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먼저 요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연근무제 중에서도 전환형 시간선택제는 고용노동부가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가정 양립 정책이다. 전일제 노동자가 임신·육아, 자기계발, 건강, 가족돌봄 등의 사유로 필요한 때에 일정기간 동안 노동시간을 단축해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노동시간에 비례해 임금도 감소한다. 대신 정부는 기업에 전환장려금과 간전노무비를 지원해 기업은 대체인력 채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노동자는 임금 감소분을 보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 덕에 지원 실적이 지난해 242개 기업 556명에서 올해(8월 기준) 391개 1005명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인식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고용부 등 6개 관계부처와 경제 5단체가 지난달 4월부터 6월 말까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526개 기업(989개사 응답), 노동자 289만명(12만3150명 응답)을 대상으로 실시한 수요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환형 시간선택제 활용 기업은 전체 응답 기업의 16.2%(160개)에 불과했다. 정부는 대체인력 충원의 어려움 및 추가 노무비 부담, 업무 특성상 교대근무 활용의 어려움, 경직적인 고용관행 등이 전환형 시간선택제 미활용의 주 요인일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응답 기업 중 33.8%(280개)는 앞으로도 전환형 시간선택제를 도입할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노동자들 또한 응답자의 10.4%(1만2823명)만 3년 내 전환형 시간선택제 활용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주된 이유는 ‘눈치’다. 응답자들은 활용 장애요인으로 ‘업무가 맞지 않음(38.4%)’, ‘임금 감소(30.9%)’, ‘인사상 불이익(27.6%)’, ‘동료 업무 과중(26.1%)’ 등을 꼽았다. 임신 4개월차 직장인인 김모씨(29·여)는 “회사에서 임신 직원에 대해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조퇴를 허용해준다고 하는데, 그것조차 눈치가 보여서 나는 아직까지 써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나영돈 고용부 청년여성고용정책관은 “시간선택제 등이 확산되려면 먼저 정시퇴근 관행이 정착돼야 한다. 밤 9~10시까지 일하는 게 당연한 직장 분위기에선 도입이 돼도 활용이 어렵다”며 “기업들도 근로시간 단축이 우수 인재 확보, 기업 생산성 제고, 창의적 조직문화 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장시간 근로관행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